이세린 한의사를
소개합니다
진료실에서는 침과 손을, 책상에서는 문장과 그림을 씁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환자와 독자에게 같은 언어로 전하고 싶습니다.

이야기
동국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한 한의사 이세린입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은 무거운 머리, 잠들지 못하는 밤, 잘 돌아가지 않는 목과 어깨를 안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을 하나씩 적어 보면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루의 리듬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의사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주 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답이 단순해졌습니다. 어두운 표정을 밝혀 주는 일, 그리고 그를 낫게 하는 일이 신뢰의 시작이라는 것.
한의대에서는 오래된 문헌과 최신 논문을 같이 읽습니다. 처음에는 그 간극이 어색했지만, 진료를 시작하고 나서는 둘 다 필요한 언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하루를 통째로 보는 눈과, 근거를 따져 묻는 태도. 저는 그 사이에서 진료를 배웠고, 지금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려 합니다.
학생 때는 한의학이 오해받는 방식이 답답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만든 영상이 전한련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억울함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필요한 건 더 나은 반박이 아니라 더 정확한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임상에서 자주 쓰는 치료일수록, 근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Frontiers in Immunology에 제1저자로 실은 호흡기 침치료 논문이 그 질문을 따라간 결과입니다. 다만 결론에는 아직 동물 실험 단계의 근거라는 점을 분명히 적어야 했습니다. 원하는 답이 나왔는지보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남긴 것은 결론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확실한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나누어 말하는 습관이요. 진료실에서 “이건 도움이 됩니다”와 “이건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를 구분해 말씀드리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환자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것이 그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인한의원에서 진료 원장으로 일하며 외국인 환자 진료와 한의약 세계화 관련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같은 치료라도 설명이 달라지면 안심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걸 그 시기에 많이 배웠습니다. 장침·매선·미용침 임상서를 동료들과 함께 쓰고, 청소년 건강서에 그림을 그린 것도, 결국 손이 가야 할 자리와 생활 속 돌봄을 더 분명하게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침과 매선 임상서를 동료들과 함께 쓴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술기를 배울 때 가장 무서운 건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손이 엉뚱한 곳에 닿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의 절반은 결국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안전을 먼저 적어 두면, 남은 자리에서는 오히려 자신 있게 손을 쓸 수 있으니까요.
청소년 건강서에는 그림으로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은 몸에 대해 놀랄 만큼 궁금해하지만, 물어볼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생리나 성장통, 잠과 체중 같은 이야기는 특히 그렇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부끄럽지 않은 어조로 건네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어조를 만드는 것이 결국 선 하나의 온도였습니다.
종로구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사업, 새만금 잼버리 한의약진료센터처럼 진료실 밖에서 한의학이 쓰이는 자리에도 참여했습니다. 대상과 환경이 달라지면 설명의 길이와 순서도 달라져야 합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말해 본 경험이, 지금의 진료 언어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 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이 페이지에 개인 기록과 인터뷰·칼럼을 남기고 있습니다. 당장의 목표는 거창한 선언보다, 환자분과 독자 앞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언어를 쌓는 일입니다. 그 기록이 앞으로의 개원과 협업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