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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료실 밖에서도 한의학을 말하는 이유

창가에 놓인 잔잔한 정물

이세린 한의사를 만난 건 목요일 진료가 끝난 뒤였습니다.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했고, 통인한의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진료했고, 지금은 한 한의원에서 환자를 만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력만 보면 여러 일을 하는 사람 같지만, 정작 본인은 “다 같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책상 위에는 두 종류의 종이가 있었습니다. 환자에게 설명하려고 그린 어깨 그림과, 집필 중인 원고.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진료실 불을 하나만 남기고 껐습니다. 하루 중 눈이 가장 피로한 시간대라고 했습니다.

대화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잘 정리된 답보다,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시작하는 대목이 더 많았습니다.

Q. 한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무엇을 기대했나요?

솔직히 말하면 아주 단순했어요. 낫게 하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단이 있고 치료가 있고, 그 사이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훈련을 받으면 되는 거라고요. 학생 때는 그 연결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제가 아직 덜 배워서라고 믿었어요.

시험은 그 믿음을 깨지 않습니다. 문제에는 답이 있으니까요. 사람에게는 그런 게 없다는 걸 시험지 밖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Q. 진료를 시작하고 나서는 어땠나요?

첫 해가 제일 힘들었어요. 교과서대로 봤고 배운 대로 놨는데, 안 낫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요. 그때는 그게 전부 제 실력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더 좋은 처방을 알면 해결될 거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했습니다. 같은 진단, 같은 치료인데 어떤 분은 좋아지고 어떤 분은 그대로였거든요. 차이가 치료 안에 없다면 바깥에 있는 거잖아요. 그 생각이 들고 나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Q. 어떻게 바뀌었나요?

“무엇이 아픈가” 대신 “이 사람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묻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게 진료 시간을 잡아먹는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그게 진료의 절반이라고 생각해요.

이 대목에서 그는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자기 말이 너무 매끄럽게 들린 게 걸린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잘 안 되는 날이 있어요.” 그가 덧붙였습니다.

Q. 하루를 묻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아침에 눈을 뜨는 방식이 어떤지부터 여쭤봐요. 알람을 몇 번 끄는지, 일어났을 때 몸이 뻣뻣한지, 첫 끼는 언제인지. 사소해 보여도 이런 게 모이면 몸의 리듬이 꽤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쉰다’는 말이 그분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요. 누워서 화면을 보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걷는 것은 몸에게 전혀 다른 일이거든요. 회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채로 지쳐 있는 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Q. 그 질문이 실제로 치료를 바꾼 경우가 있나요?

어깨가 잘 안 올라간다고 오신 분이 있었어요. 몇 주째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는데, 하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유독 목요일에 심해지더라고요. 수요일 밤마다 마감이 있었습니다. 그 하루를 못 자고, 다음 날 어깨가 굳는 패턴이었어요.

그걸 알고 나서 치료 요일을 바꿨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오시게 하고, 수요일 밤에 할 수 있는 걸 딱 하나만 정해 드렸어요. 침을 더 잘 놔서 좋아진 게 아니라, 침이 닿는 시점을 바꿔서 좋아진 경우입니다. 저는 이런 게 한의학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반대로, 그렇게 물어도 안 풀리는 경우는요?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고요.

그럴 때 하지 않으려는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원인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 설명이 있으면 환자분도 저도 마음이 편해지지만, 없는 이유를 지어내면 다음 치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갑니다. 다른 하나는 계속 붙잡고 있는 것. 검사가 필요하거나 다른 과에서 봐야 할 문제라면 그렇게 말씀드리는 게 맞습니다.

“제가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 말이 신뢰를 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안다고 말할 때, 그 말이 무게를 갖는 것 같아요.

Q. 글과 그림은 언제부터 필요해졌나요?

설명이 문 밖에서 흐려지는 걸 반복해서 봤어요. 진료실에서는 다 이해하셨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오시면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였죠?” 하시는 거예요. 그분 탓이 아닙니다. 말은 원래 그렇게 사라져요.

그래서 남는 형태를 찾기 시작했어요. 종이에 그려 드리는 것부터 시작했고, 그게 나중에 책이 됐습니다. 저는 글과 그림이 홍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명의 수명을 늘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Q. 책 작업에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무엇인가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장침은 깊이 들어가는 술기라, 어디를 피해야 하는지가 절반입니다. 처음엔 그게 소극적으로 느껴졌는데, 쓰다 보니 반대였어요. 피할 곳이 분명하면 남은 자리에서는 오히려 과감해질 수 있습니다.

청소년 책에서는 그림을 맡았는데, 거기서는 어조가 제일 어려웠어요. 정확하게 그리면 무섭고, 부드럽게 그리면 부정확해지는 지점이 있거든요. 아이가 자기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의 온도. 그걸 선으로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Q. 논문은 왜 쓰게 되었나요?

매일 쓰는 치료인데 근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모른다는 게 불편했어요.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과, 어디까지 확인됐는지 아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그래서 호흡기 쪽 침치료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모아 봤고, 그게 2022년에 Frontiers in Immunology에 제1저자로 실은 논문이 되었습니다.

정작 배운 건 결과가 아니라 결론을 쓰는 방법이었어요. 그 근거는 아직 동물 실험 단계라서, 사람에게서 확인된 것처럼 읽히면 안 됐거든요. 그 한 문장을 정확히 쓰는 데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Q. 연구가 진료를 바꿨나요?

솔직히 말하면, 치료법을 바꾸진 않았어요. 논문 하나로 침 놓는 자리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바뀐 건 말하는 방식이었어요. 예전에는 “이건 도움이 됩니다”와 “이건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를 뭉뚱그렸어요. 확신 있게 말해야 환자분이 안심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정확하게 말해야 안심한다고 생각합니다.

Q. 통인한의원에서의 시간은 어떤 영향을 남겼나요?

외국인 환자를 많이 만났어요. 언어가 다르니까, 제가 평소에 얼마나 대충 설명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더라고요. 한국어로는 뭉뚱그려도 넘어가던 문장이 번역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뜻이 정확하지 않으면 옮길 수가 없으니까요.

그때 배운 게 지금 기록을 네 가지 언어로 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질문은 언어와 상관없이 거의 같았거든요. 그러면 답도 같은 정확도로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료실 밖에서 마지막 직원이 인사하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잠시 문 쪽을 보다가 다시 앉았습니다. 다음 질문에는 답이 조금 늦게 나왔습니다.

Q. 요즘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인가요?

시간이요. 진료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게 다 같은 일이라고 말했지만, 하루의 시간은 나눠 써야 하니까요. 어느 쪽도 충분히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더 어려운 건 따로 있어요. 제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요. 진료는 그래도 환자분 얼굴을 보면 압니다. 글이나 그림은 도착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Q. 개인 페이지를 만들고 기록을 공개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오래 망설였어요. 의료인이 자기를 알리는 일에는 조심스러운 선이 있잖아요. 저는 그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그래서 스스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특정 치료를 만능인 것처럼 쓰지 않기, 한 사람의 경과를 모두의 결과처럼 옮기지 않기, 불안을 이용하지 않기. 이 세 가지를 지키면 남는 건 결국 제 생각과 제 방법뿐이에요. 그 정도는 공개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불편합니다. 이 불편함이 없어지면 그때가 위험한 때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만들고 싶은 한의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화려한 약속보다, 오래 곁에 남아 리듬을 조율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한 번 와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하고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몸이 다시 자기 속도로 돌아가는 과정을 같이 보는 공간이요.

구체적으로는 초진에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제가 하는 문진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게 제일 맞추기 어려운 조건이거든요. 좋은 진료는 결국 시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10년 뒤에 이 인터뷰를 다시 읽는다면, 어떤 부분이 부끄러울 것 같으세요?

아마 확신에 찬 문장들이겠죠.(웃음) 지금 제가 안다고 믿는 것 중에 몇 개는 틀렸을 거예요.

그래도 틀린 걸 나중에 알려면 지금 적어 둬야 합니다. 적어 두지 않으면 슬쩍 바뀐 것을 스스로도 모르거든요. 기록의 쓸모가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본인의 균형은 어떻게 지키시나요?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두 가지는 지키려 해요. 진료가 끝나면 십 분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요.

환자분께 리듬을 말씀드리는 사람이 자기 리듬을 잃으면 설득력이 없잖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돌아올 자리를 알고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 자리는 종이와 펜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책상 위의 그림을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봤던 어깨 그림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또 쓸 거라고 했습니다. 같은 그림을 여러 번 그리게 되면 그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그러면 책으로 만들 때가 된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