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Stories

인터뷰

진료실 밖에서도 한의학을 말하는 이유

창가에 놓인 잔잔한 정물

성수 두나한의원에서 진료하는 이세린 한의사를 만났습니다.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통인한의원에서 외국인 환자 진료와 임상 교육 콘텐츠를 경험 뒤, 지금은 환자 곁과 글쓰기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진료실 밖에서도 한의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를, 천천히 물었습니다.

인터뷰는 진료가 끝난 뒤 짧은 휴식 시간에 진행되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환자분께 설명하던 그림 자료와, 집필 중인 메모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침을 놓는 손과 문장을 고르는 손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장면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읽혔습니다.

Q. 요즘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세린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요. 목·어깨 통증으로 오셨는데 잠을 못 잔다거나, 소화가 안 되고 집중이 안 된다고 덧붙이시는 경우가 많죠. 증상이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오래 흐트러진 생활의 리듬으로 읽힐 때가 있습니다.

이세린 특히 성수처럼 일과 생활의 경계가 흐린 동네에서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뒤늦게 모아져 오는 느낌이 있어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쌓인 피로와 긴장이 어느 순간 통증으로 이름을 얻는 거죠. 그래서 저는 첫 상담에서 증상 목록만 받지 않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부터 여쭤보려 합니다.

Q. 환자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요?

이세린 ‘무엇이 아픈가’도 중요하지만, ‘언제 덜하고 언제 더한가’를 더 주의 깊게 봐요. 아침에 심한지, 오래 앉아 있을 때 심해지는지, 생리 주기나 수면과 맞물리는지. 그 결을 따라가면 치료 방향이 훨씬 또렷해지거든요. 한의학이 강점인 지점도 바로 그 연결을 읽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한의사로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요?

이세린 진료실에서 드린 설명이 문 밖으로 나가면 금세 흐려질 수 있어요. 책과 그림은 그 설명을 더 오래 남겨 두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장침·매선 책을 만들 때도 문장보다 ‘손이 가야 할 위치’가 보이도록 공을 들였어요. 청소년 건강서를 쓸 때는 어려운 용어를 줄이고, 몸 신호를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돕고 싶었고요.

이세린 그림을 그리는 일도 비슷해요. 말로 길게 설명하기보다, 한 장의 해부 레이어나 스트레칭 컷이 더 정확한 경우가 있거든요. 저는 글과 그림이 홍보용 부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료의 연장이고, 환자가 집에서도 자기 몸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도구입니다.

Q. 통인한의원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진료에 남긴 것이 있다면요?

이세린 외국인 환자를 만나며, 좋은 치료는 언어를 넘을 수 있어도 좋은 설명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같은 침 치료라도, 왜 이 자리를 쓰는지, 치료 후 어떤 감각이 남을 수 있는지, 생활에서 무엇을 조심하면 좋은지를 또렷이 전달해야 안심이 생기더라고요.

이세린 그래서 한의학을 더 또렷한 말로 옮기는 일에 계속 관심이 있습니다. 연구 논문도, 공모전 영상도, 결국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지금은 그 질문이 개인 페이지의 기록과 인터뷰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만들고 싶은 한의원의 모습은요?

이세린 화려한 약속보다, 오래 곁에 남아 리듬을 조율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한 번 와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 뒤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몸이 다시 자기 속도로 돌아가는 과정을 같이 보는 공간이요.

이세린 지금은 두나한의원에서 그 감각을 다지고, 개인 기록과 콘텐츠로 앞으로의 개원과 협업의 기반을 만들고 있어요. 환자분의 표정이 조금 더 편해지는 순간이, 여전히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 순간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정확한 언어로 전하고 싶습니다.